최근 국제 유가가 배럴당 120달러를 돌파하며 국내 휘발유 가격이 리터당 2,000원 선을 넘어서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했다. 이에 정부는 1997년 유가 자유화 조치 이후 단 한 번도 시행된 적 없던 ‘석유 최고가격제’라는 초강수를 검토하기 시작했다. 이 제도는 단순히 기름값을 낮추는 대책을 넘어, 국가가 시장의 가격 결정권에 직접 개입한다는 점에서 경제계와 시민사회에 엄청난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1. 이재명 대통령의 발언과 정부의 단호한 의지
2026년 3월 9일, 이재명 대통령은 용산 대통령실에서 주재한 비상경제점검회의에서 최근의 고물가 상황을 ‘민생 비상사태’로 규정했다. 특히 서민 경제의 혈관과도 같은 에너지 가격 폭등에 대해 정부가 더 이상 시장의 자율 정화 기능에만 의존할 수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이 대통령은 “비정상적인 대외 변수로 인해 국민의 생계가 위협받는 상황에서, 시장 원칙만을 고수하는 것은 정부의 직무 유기”라며, “석유 제품에 대한 최고가격제를 신속히 검토하고, 가격 폭리 행위에 대해 국가가 가진 모든 행정력을 동원해 차단하라”고 지시했다. 이는 과거의 유류세 인하와 같은 간접적인 방식만으로는 현재의 ‘공포 랠리’를 막기에 역부족이라는 판단이 깔린 것으로 풀이된다.
2. 석유 최고가격제란 무엇인가? (개념과 법적 근거)
석유 최고가격제는 ‘석유 및 석유대체연료 사업법’ 제23조에 명시된 제도다. 국민 생활의 안정과 국민 경제의 원활한 운영을 위하여 필요하다고 인정될 때, 정부가 석유 제품의 판매 가격에 상한선을 설정하는 것이다.
- 작동 원리: 정부가 휘발유나 경유의 리터당 판매 가격을 예컨대 ‘1,800원’으로 지정하면, 전국의 모든 주유소와 정유사는 그 이상의 가격으로 기름을 팔 수 없다.
- 처벌 규정: 이를 위반할 경우 2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0만 원 이하의 벌금형에 처해질 수 있으며, 부당하게 취득한 이익은 국가가 환수한다.
위 그래프에서 볼 수 있듯이, 최고가격제는 균형 가격보다 낮은 지점에 가격 상한선을 설정함으로써 단기적으로 소비자 부담을 줄이는 효과를 낸다. 하지만 이는 수요와 공급의 불균형을 초래할 수 있는 양날의 검이기도 하다.

3. 석유 최고가격제는 왜 지난 30년간 사용되지 않았는가?
대한민국은 1997년 석유 가격 자유화를 단행했다. 그 이전에는 정부가 매달 기름값을 고시했으나, 시장 경쟁을 통해 효율성을 높이고 국제 유가 변동에 유연하게 대응하기 위해 자유화를 선택했다. 이후 30년 동안 이 제도가 사문화되었던 이유는 다음과 같다.
A. 시장 왜곡과 암시장 형성
가격이 인위적으로 낮게 설정되면 수요는 폭발하는 반면, 공급자는 이윤이 남지 않아 공급을 줄이게 된다. 이는 결국 ‘번호표를 뽑고 기다려도 기름을 넣지 못하는’ 수급 불균형을 초래하며, 뒷돈을 주고 기름을 사는 암시장이 형성될 위험이 크다.
B. 정유업계의 손실 보전 문제
우리나라는 원유를 100% 수입한다. 국제 원유 가격은 오르는데 국내 판매가만 묶어두면 정유사는 팔수록 적자를 보는 구조가 된다. 이를 정부 예산으로 보전해주기 시작하면 막대한 재정 적자가 발생하게 된다.
C. 통상 마찰 가능성
과도한 시장 개입은 FTA 등 국제 무역 협정에서 보조금 이슈나 시장 경제 지위 문제로 비화될 우려가 있어, 역대 정부들은 이를 최후의 수단으로만 남겨두었다.
4. 이번에는 왜 도입을 검토하며, 어떤 영향이 예상되는가?
정부가 이러한 부작용 우려에도 불구하고 ‘봉인’을 해제하려는 이유는 지금의 고유가가 공급 부족보다는 심리적 요인과 투기적 수요에 의해 주도되고 있다는 판단 때문이다.
도입 배경: 투기 세력에 대한 경고
국제 유가가 조금만 올라도 국내 주유소들이 ‘재고분’마저 즉각 인상하는 행태를 차단하겠다는 의지다. 즉, 시장의 탐욕이 민생을 파괴하는 임계점에 도달했다고 보는 것이다.
예상되는 긍정적 영향
- 물가 상승 심리 차단: 기름값은 모든 물가의 기초가 된다. 휘발유 가격이 안정되면 물류비가 낮아지고, 이는 식품 및 공산품 가격 인상 압력을 낮추는 연쇄 효과를 가져온다.
- 가계 가처분 소득 증대: 서민들의 필수 지출 비용인 유류비가 고정됨으로써 소비 침체를 막는 방어막 역할을 한다.
우려되는 부정적 파장 (Side Effects)
- 매점매석 기승: 제도 시행 직전이나 시행 중에 기름을 숨겨두는 행위가 빈번해질 수 있다. 정부가 범부처 합동 단속반을 운영하겠다고 밝힌 이유다.
- 주유소 폐업 위기: 영세 주유소들은 대형 정유사로부터 비싸게 떼어온 기름을 정부 고시가대로 싸게 팔아야 하므로 경영난에 봉착할 수 있다.
- 장기적 에너지 과소비: 유가가 비싸야 에너지 절약 유인이 생기는데, 가격을 억누르면 오히려 에너지 소비가 줄어들지 않아 외화 유출이 심화될 수 있다.
5. 과거 사례로 본 가격 통제의 역사 (해외 사례 포함)
석유 최고가격제와 유사한 정책은 1970년대 오일쇼크 당시 미국에서도 시행된 적이 있다. 닉슨 행정부는 물가 안정을 위해 임금과 가격을 동결했으나, 결과적으로는 공급망 붕괴와 더 심각한 인플레이션을 초래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한국 정부가 이번에 이 ‘실패의 역사’를 어떻게 극복할지가 관전 포인트다.
6. 정유사 vs 주유소 vs 소비자: 누가 웃고 누가 우나?
- 정유사: 원가 부담을 떠안아야 하는 상황에서 정부의 보전 대책이 미흡할 경우 가동률을 낮출 가능성이 있다.
- 주유소: 임대료와 인건비는 오르는데 판매가만 묶이면 폐업 위기에 몰릴 수 있다. 특히 알뜰주유소와 일반주유소 간의 갈등이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 소비자: 당장의 유류비 절감은 반갑지만, 기름을 구하기 위해 여러 주유소를 돌아다녀야 하는 ‘오일 런(Oil Run)’ 사태를 걱정해야 한다.
7. 석유 최고가격제에 따른 향후 전망 및 시각
석유 최고가격제는 분명 강력한 처방이다. 하지만 이는 ‘치료제’라기보다는 통증을 억누르는 ‘진통제’에 가깝다. 정부가 이 카드를 꺼내 든 것은 시장에 강력한 경고 메시지를 보내는 동시에, 국민들에게 “정부가 민생을 끝까지 책임지겠다”는 신호를 주는 정치적 결단으로 보인다.
전문가들은 이 제도가 성공하려면 ‘정교한 보상 체계’와 ‘철저한 유통 단속’이 병행되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단순히 가격만 묶어두는 것이 아니라, 수입 단가와 연동된 유연한 상한선 설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앞으로 수 주 내에 구체적인 고시 가격과 시행 시기가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우리 경제가 이 초유의 실험을 성공적으로 통과하여 물가 안정을 이룰 수 있을지, 아니면 시장의 반격에 직면할지 전 국민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